Carpe Diem 에 대하여

 

Carpe Diem에 대하여

 

                                                                       제 일 호

 

요즈음 인기있는 TV 프로그램인 거침없이 하이킥인가 하는

시트콤에서 우째 이 말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설명 글 들이 없는 것 같아 얕은 지식을 동원하여 그 말의 일반적 의미와

그 말이 던져주는 실질적 의미,

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이

아이들에게 왜 이 말의 의미를 가르칠려고 하였는지를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 아비규환의 입시지옥과 비교하여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본다.

 

 

 

1. 일반적 의미

 

라틴어에서 온 말로 영어로 번역을 하면

Sieze (Catch) the day. (오늘(현재)를 즐겨라)

Enjoy the moment. (지금의 매 순간에 충실하라)

정도로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말의 더 멋진 번역이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2. 실질적 의미

 

존 키팅은 미국의 찬송가의  한 구절로써 설명을 한다.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old time is still a -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시간이 흘러 오늘 핀 꽃이...

내일이면 질 것이다")

이 말의 실질적 의미는 존의 언급속에서 드러나게 되는데.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한 순간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그 중요한 순간들을 사치나 향락에 빠져 인생을 허비함도

무의미하지만,

입시지옥에서 마음껏 자유로운 사색을 즐길 수 없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사색을 위하여 그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획일화된 입시세계에서 자기 스스로의 자아가 무엇인지를

찾지 못하고 헤매이는 학생들에게 존은 마음껏

자기만의 사유의 공간을 넓혀 나가라는 의미에서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네이버 검색에서 나오는 동아대백과사전의 설명이 엉터리로

나오고 있어 그 의미의 전달이 잘못됨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치나 향락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상이라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면서 즐겁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간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동아대백과 사전)

물론 크게 하자는 없는 무난한 설명이기는 하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면서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주어진 여건에 만족한다는 체념의 의미는 없다.

주어진 여건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장미 봉우리가 상징하는 것은 최고의 정점이다.

누구든 자기만의 최고점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만이 가지는 인간 고유의 자유로운 사색인 것이다.

동아대백과의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마치 지금은 힘들어도 참고

현재를 만족하며 살면서 신앙을 가지면

내세에는 천국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논리가 너무 강하고,

다분히 계급지배의 정당화를 내세우는 것 같고 그것을 부각시키는 것 같아

올바름 설명이라고 할 수가 없다.

자 그렇다면 이 말을 제일호식으로 다시 설명 하겠다.

" 인생을 즐겨라. 단 그것이 사치나 향락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상들이 나를 막아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그 일상을 나만의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 최고의 정점에 이르를 수 있도록 만들고

바로 그 순간을 즐겨라" (제일호)

억지스러울 수도 있으나  현재의  뒤틀리고 비뚤어진 한국의 교육제도를 보며,

존의 제자인 페리(영화에서 자살한 인물)가 수도 없이 나오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까워 이 말을 한 것이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떠냐? 나만의 최고의 영역을 만들어 가면 되지.

성공이나 입신 출세, 그리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속물의 사회에서 공부라는 획일의 과제로 아이들을 내모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울러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의 선택이

안타깝기도하다.

제발 공부에 초점을 맞추는 획일적인 사고를 하지말라.

어딘가에 있을 나만의 공간과 시간들을 만들려고 해라.

그리고 그 속에서 즐거움과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하라.

바로 그것이 카르페 디엠이 진정으로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의미인 것이다.

 

 

3. 한국의 입시 제도하에서 카르페 디엠은 과연 가능한가?

 

가능할 수 있고 그러도록 만들어야 한다.

몋년전 참여정부의 실세 총리라 불리던 분께서 김대중 정권때 장관을 하면서

내세운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7차교육 개정안을 내 놓은 적이 있다.

물론 그 제도는 공과 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전체적인 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켰다는 실과 우리 교육이 가야할바를

제시했다는 공을 동시에 얻었다.

그런데 이 말에 정말 문제가 많다.

학력저하가 수학 문제 좀 못 풀고 영어 한마디 잘못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논리적인 사고력과 창조적 비판의 능력을 약화시킨데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전반적인 사회구조와 사회제도를 동시에 바꾸지 않는 이상

어떠한 교육제도를 적용해도 모두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좁은 문을 통과한자만이 물신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에서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자들만을 간추려 내야 하기때문에

시험은 으레 있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의 결과물로서 서열을 매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시험을 치를수는 있는 기회의 평등은 보장된 사회이므로

시험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험이 정말 그렇게 공정한가.

아버지 잘 만나면 한방에 해결 된다.

어릴 때부터 고액 과외를 받으면 안되는 놈 거의 없다.

이게 무슨 교육이란 말인가?

참된 인격체를 지닌 사회의 동량을 키워내고

인격의 성숙과 자아의 성장을 돕는다는 교육 본래의 취지가

계급의 서열화를 합리화시키는 제도로 전락해버린 상태에서

무슨 제도니 전인 교육이니 떠들어보았자

망구 시잘데기 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교육의 이러한 모순 역시 우리 사회가 가지는 체제적인 구조의 모순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를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난다.

그래서 한마디 한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이 체제하에서는 답이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고 차선의 방법을 강구하여야 하는 바,

당장에 대학의 서열화만 없애도 훨씬 나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의 엘리트 의식에 젖어있는 수구꼴통들과 주로 그들의 모교인 소위

명문대학들이 과연 그렇게 하겠는가?

절대 하지않을려고 하겠지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단 대학의 서열화를 없애면 과도한 입시경쟁은 조금은 약화 될 것이고,

사교육의 바람도 잦아질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카르페 디엠 할 수 있는 세상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우리의 교육이 이토록 파행을 걷는 원인은 계급의 서열화.

곧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대학의 서열화에 있음을 제발 깨닫자.

계급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현시점에서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대학의 서열화 없는 세상을 만들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근본의 문제를 치유하기보다는 눈가리고 아웅식의 조삼모사를 일삼는

우리의 사회에 한마디 던진다.

제발 솔직해지자고.

교육을 계급세습의 도구로 이용하다보니

근본적인 치유책에 절대 접근할 수가 없다고.

 

 

존 키팅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물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사색가들을 키우고 싶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미 가정에서 부터 물화되어버린 어린 영혼들을

다시 일으켜세운다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나만의 카르페 디엠을 추구한다.

열린 세계에 대한 무한의 사색을 하며 오늘도 그들에게 접근을 시도해본다.

당장 내일 잘릴지라도.

존 키팅을 거리로 내모는 사회에서

교육의 발전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것이 현실이다.

 

 

by 제1호 | 2007/03/06 05:33 | 사회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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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zrchoe at 2008/05/23 08:32
그렇습니다. 이미 교육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밥상이 살아졌습니다.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입니다. 황금만능 가치관이 인간쓰레기 청소부격인 (물론 사회정의를 세우려는 고상한 목적의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검사직, 경검찰직, 의사, 변화사에 매료되게 하였고, 면사무소 앞에는 간간히 "축 000군 00 법대 합격"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현수막을 쳐다보게 되는 현실입니다.

거짓과 진실이 끝까지 왜곡되고 빛과 어두움이 구별되지 않고, 진정 가치있는 일과 가치없는 일이 혼돈된 사회에서 바른 눈으로 바른 교육을 감당할 재간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서당이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법이 살아있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도 그 말에 우리는 화를 내지는 않는 상태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실존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세워나가야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가능하면 귀를 막아야 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차라리 한 송이 꽃을 보고, 나비를 보고, 그리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귀를 귀울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자연은 종합교육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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